노래가 끝나자 학생들의 갈채와 연호가 이어졌다. 갈색머리의 가희는 고개를 들고 능숙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그러다 순간이지만 벨레스와 눈이 맞았다. 도로테아가 한쪽 눈을 찡긋이더니 그대로 빙그르르 돌아 사람들로 복작이는 정원을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우연이었나, 아니면 눈의 착각이었나,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터라 알 길이 없다. 베레스는 몸을 돌렸다. 난데...
삑.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가 꺼진다. 앙겔라는 사이드 미러가 접히는 모습을 보며 자동차 키를 주머니에 넣었다. 길고 길었던 하루의 끝이 보이고 있다. 늦은 밤의 지하 주차장은 여느 때처럼 적막하기 그지없고, 지하 특유의 싸늘함과 지하의 지하 그 밑바닥에 깔린 듯한 공명음은 아주 손쉽게 인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앙겔라는 천둥소리처럼 울려 ...
똑똑.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방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밤이 많이 늦었다. 잠이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그녀가 내는 소리 때문에 깨어난다면 낭패였다. 방문한 목적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역설적인 일은 없다. 그녀는 즉각 문에서 몸을 돌렸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돌연 바람이 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그녀의 발길을 붙잡았...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주도록 해.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 단단한 감촉. 두 사람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겹쳐진다. 하나는 어린 소녀, 다른 하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다. 높낮이에서 나이까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목소리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 둘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손에 잡힌 동그란 금속을 얼굴 가까이 집어 올린 그녀가 찬찬히 문양을 살펴...
3. 그녀는 부르지 않는다 "박사아아니이임-."또 시작이다. 하지만 이주 가량 되는 시간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디바의 칭얼댐을 무시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소녀가 하는 말을 빨리 들어주고 하던 일에 돌아가는 편이 시간상으로나 그녀의 정신건강상으로나 이로웠다. 한번은 무시하려고 했다가 장장 한시간 가까이 옆에서 쫑알대는 걸 듣고 있어...
잔잔한 파도 소리가 조용히 밀려온다. 거품이 얇게 깔린 모래 위에 희미하게 발자국이 남아있다. 넓게 펼쳐진 지평선 위로는 햇빛이 게으르게 반짝인다. 느긋한 흐름으로 저물어가는 해변의 모습이다. 아직은 노을이 깔리기에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해서 한낮의 정오처럼 화창한 빛깔은 아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잔재만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애매한 시간이다. 사진으로...
A Cat feverish -당신을 보면 고양이가 생각나. -뭐? -좀 많이 위험한 부류겠지만. 그 여자의 말이 떠오른다. 그날 밤은 아주 길고 지루했다. 마음껏 총질을 할 수 있는 날이 있으면 계속해서 주위를 경계하면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물론, 그렇게 지루했던 일들도 결국은 싸움으로 번지고, 차례대로 무릎에 총알을 쏴주는 것으로 종결되지만....
1. 그녀는 잘 놀라지 않는다 "박사님, 좋아해요!" 어느날 오후, 앙겔라 치글러는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았다. 손에 들고 있던 펜이 바닥에 떨어져서 구르는 것도 무시하고서 눈앞의 소녀를 바라본다. 새빨간 볼과 질끈 감은 눈, 앙 다문 입술. 실로 전형적인 '첫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면 첫사랑의 대상이 바로 앙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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